내가 사는 곳에 이런 보도블록이 있다.


이따금 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나 산책을 할 때, 일부러 하얀 블록만을 밟으며 걷는다. 그러면 마치 클라이밍을 하는 기분이 든다. 한 발로 서서 어딜 밟아야 할지 고민할 때도 있다. 이게 쉬워 보여도 발을 한 번만 잘못 디디면 발이 꼬여서 휘청, 떨어지고(?) 만다. 한쪽으로 쏠리면 절대 안 된다. 그러다가 가끔은 스스로 치사하지만 회색 블록까지는 용인해준다. 그러면 훨씬 쉽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아차! 하는 순간 발이 꼬여 떨어지고(?) 만다. 물론 떨어지는 건 진짜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나 혼자의 게임에서는 분명히 떨어지는 것이다. 낭패감을 느낀다.


이 보도를, 흰 블록 밟기를 하지 않았을 때는, 정해진 패턴에 의한 보도블록 덩어리 자체를 시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. 그런데 이 보도에는 패턴이 없다. 그런 부분이 있을까 싶어 일부러 찾아보았지만 단 한 곳도 반복되거나 모양이 겹치거나 똑같거나 그런 곳이 절대 없다. 그렇다면 이건 디자인이다. 시공하시는 분 임의의 패턴 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. 그분은 이곳을 시공할 때 나처럼 흰 블록 밟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염두하면서 벽돌을 끼워 넣었을까? 그렇지 않다 해도 신기한 일인데 설마 그렇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!!!! 나는 천재 디자이너의 패턴에 항상 도전하는 것이다. 매번 할 때마다 같은 수로 걸어지지 않는, 마치 장기나 바둑을 두는 느낌까지 든다. 생각할수록 경이롭다. 박수!!!!


 이 보도를 걷는 건 당연히 매우 쉽다. 떨어지면 오징어 게임처럼 누가 죽이거나 하지 않는 보통의 보도이니 그냥 걸으면 된다. 하지만 흰 블록을 밟기에 빠지면.... 쉽지 않다. 뒤에서 보면 내 걸음 모양새는 술 취한 사람이나 혹은 똥 싼 사람이 걷는 모양새로 보일 것이다. 그것 생각하다가 다리 벌리기를 주저하고 한 번이라도 발을 엇으로 디디면 죽는(?) 거다. (어느새 떨어지는 것에서 죽는 것으로 변했다.) 그런 모양새를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하게 되는 흰 블록 밟기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.

 발이 꼬이지 않고 걸음 모양새는 흉했지만 쩍벌 쩍벌 하며 한 두 번 정도는 흰 블록 밟기에 성공했던 것 같다. 

그 쾌감은, 크~~~~!!! 

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자기 만족감은 크~~~!!! 

그 뒤에도 자주 시도하지만 성공 패턴을 외우지 못하니 실패도 잦다. 왜 자꾸 시도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된다. 

외워서 숫자를 매겨놓고 싶다. 하얀 블록만 밟는 고급 버전과 회색을 세 번만 허용해주는 있는 중급 버전, 회색 블록을 포함하는 초급 버전으로 안내서를 만들고 싶다. 난 아마도 흰 블록 밟기 중독인가 보다!!!




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클라이밍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재미있는 공간이다.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도전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. 따로 놀이터를 구성할 필요가 없는 아주 효율적인 곳이다. 물론 다른 보행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놀면 안 되지만 말이다.

 





 그런 것인가 싶다, 인생이란 것이.

발 한번 잘못 디디면 꼬이고 떨어지고 죽기도 하는 것이 마치 이 보도블록 같다는 생각을, 흰 블록 밟기 할 때마다 느낀다. 

 어찌어찌 용케 밟아서 패스하는 사람도 있고, 꼬이면 꼬이는 대로 극복하는 사랍도 있고, 꼬이면 그냥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, 어떤 이유에서건 흰 블록만을 뜀질해가며 밟아 건너가는 사람도 있고, 오히려 갈색 블록을 걷는 사람도 있고, 애초에 흰 블록이 없는 길을 걷는 사람도 있겠다. 이 5미터 남짓의 보도블록이 인간의 인생역정처럼 느껴질 때가 자주다. 

 갈색 블록을 걸으며 흰 블록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을 알지만 나는 예전부터 그렇듯이 여전히 흰 블록을 밟는다.


 오늘도 도전, 보도블록의 흰 블록에 한 발을 내딛고 다음에 어느 것을 디딜지 생각한다. 흰 블록? 갈색 블록? 회색 블록? 그도 아니면... 차도....?